1장
ΙΑΚΩΒΟΥ ΕΠΙΣΤΟΛΗ야고보서
1장
1절Ἰάκωβος θεοῦ καὶ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δοῦλος ταῖς δώδεκα
φυλαῖς ταῖς ἐν τῇ διασπορᾷ χαίρειν.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개역개정)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하나님이시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육체로 계셨을 때, 그의 동생이었다. 열 두지파라는 의미는
야고보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가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라는 것이다.
2-3절 Πᾶσαν χαρὰν ἡγήσασθε, ἀδελφοί μου, ὅταν πειρασμοῖς περιπέσητε ποικίλοις, γινώσκοντες ὅτι τὸ δοκίμιον ὑμῶν τῆς πίστεως κατεργάζεται ὑπομονήν.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개역개정)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그것을 모두 기쁘게 여기라 이는 믿음에 도달하려는 너희의 시도가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페이라스모이스는 (마귀의)유혹을 의미한다. 마귀는
택한 자까지도 넘어지게 만들려고 하며, 이 땅에서 예수님까지도 유혹했다. 도키미온은 시도하는 것(영어로 the
trying)이다.『휘포(~아래)모네(머물다)』는 합성어다. 말씀이신 하나님 아래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해 머무는 것과 같다. 성도가
마귀의 유혹에 순간적으로 빠지면, 믿음의 시도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머물게 되므로 오히려 기쁘게
여기라는 것이다. 휘포모네는 오늘날 『관상(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기도』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4절ἡ δὲ ὑπομονὴ
ἔργον τέλειον ἐχέτω, ἵνα ἦτε τέλειοι καὶ ὁλόκληροι ἐν μηδενὶ λειπόμενοι.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개역개정)
『온전한 인내의 사역을 이루라 이는 너희로 완전하고 완벽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 머무는 것(헤 데 휘포모네)은 온전한 사역을 갖게 한다는 의미다. (에르곤: 사역, 텔레이온:온전한, 에케토:갖게한다) 온전히 이루라 로 번역된 것에는 사역이라는 말이 빠져 있다.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들이 사탄의 유혹에 빠지면 온전한 사역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 머물게 되면,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사역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5절 Εἰ δέ τις ὑμῶν λείπεται σοφίας, αἰτείτω παρὰ τοῦ διδόντος θεοῦ πᾶσιν
ἁπλῶς καὶ μὴ ὀνειδίζοντος, καὶ δοθήσεται αὐτῷ.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개역개정)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여쭈어 보라 그리하면 그것을 주시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지혜라고 번역된 소피아스는 1장 4절에서 미혹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한 것이다. 아이테이토의 기본형은 아이테오로서 여쭙다(ask) 라는 의미다.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여쭈어봐라는 것이다.
6-8절 αἰτείτω δὲ ἐν πίστει μηδὲν διακρινόμενος· ὁ γὰρ διακρινόμενος ἔοικεν
κλύδωνι θαλάσσης ἀνεμιζομένῳ καὶ ῥιπιζομένῳ. μὴ γὰρ οἰέσθω ὁ ἄνθρωπος ἐκεῖνος ὅτι λήμψεταί τι παρὰ τοῦ κυρίου,ἀνὴρ
δίψυχος, ἀκατάστατος ἐν πάσαις ταῖς ὁδοῖς αὐτοῦ.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개역개정)
『오직 믿음으로 여쭙고 조금도 판단하지 말라 판단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받을 줄로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안정이 없는 자로다』(헬라어 번역성경)
아이테이토는 여쭈어보다 라는 의미다. 에로타오는 친구간에 물어보는 것이지만, 믿음으로 물어보는 것과는
다르다. 전지전능하신 권능자에게 믿음으로 불어보는 것은 확실한 답이 있기 때문이다. 디아크리노메노스는 디아(~을 통하여)와 크리노(판단하다)의
합성어다. 주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 속으로 들어가서
판단하지 말하는 것이다. 만일 판단하게 되면 바다 물결처럼 요동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믿음은 완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신 사례들이
많은데, 병을 고친 후에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없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는 자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을 믿기도 하지만, 자기의 생각을 섞는 자들이다.
안드로포스는 영어로 human으로서 일반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아네르는 남자라는 의미로
사역자를 의미한다. 사역자가 자기 생각을 섞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9-11절 Καυχάσθω δὲ ὁ ἀδελφὸς ὁ ταπεινὸς ἐν τῷ ὕψει αὐτοῦ, ὁ δὲ πλούσιος ἐν τῇ ταπεινώσει αὐτοῦ, ὅτι ὡς ἄνθος χόρτου παρελεύσεται.
ἀνέτειλεν γὰρ ὁ ἥλιος σὺν τῷ καύσωνι καὶ ἐξήρανεν τὸν χόρτον, καὶ
τὸ ἄνθος αὐτοῦ ἐξέπεσεν, καὶ ἡ εὐπρέπεια τοῦ προσώπου αὐτοῦ ἀπώλετο· οὕτως καὶ ὁ
πλούσιος ἐν ταῖς πορείαις αὐτοῦ μαρανθήσεται.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개역개정)
『낮은 계층의 형제는 자기의 높아짐을 자랑하고 부유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것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열기가 풀을 시들게 하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유한
자도 그 추구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사라지리라』(헬라어 번역성경)
낮은 형제들은 사회적인 신분이 낮은
자들인데,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므로 신분이 높아짐을 자랑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부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는 자로 생각해서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에 대해서 낙타와
바늘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을 했다. 파렐류세타이는 나그네가 잠깐 머물다가
지나가는 의미다. 이 땅에서의 부자도 나그네처럼 잠깐 만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1장 1-8절에서
마귀의 유혹을 말한 후에 1장 9-11절에서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다시 1장
12절에서 마귀의 유혹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사역자들이 돈으로 인하여 미혹받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12절Μακάριος ἀνὴρ
ὃς ὑπομένει πειρασμόν, ὅτι δόκιμος γενόμενος λήμψεται τὸν 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 ὃν ἐπηγγείλατο
τοῖς ἀγαπῶσιν αὐτόν.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개역개정)
『보좌에 머무는 것을 시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보좌에 머무는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승리의 월계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서 시험을 참는 것으로 번역된 것은『마귀의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부자가 휘포모네(심령 속의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는)의 기도를 하면, 물질에 대한 탐욕의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주님이 승리의 관을 주신다. 면류관으로 번역된 스테파논은 승리의 월계관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면류관은 왕이 쓰는 것이고, 여기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쓰는
월계관이다.
13-14절 μηδεὶς πειραζόμενος λεγέτω ὅτι ἀπὸ θεοῦ πειράζομαι· ὁ γὰρ θεὸς ἀπείραστός
ἐστιν κακῶν, πειράζει δὲ αὐτὸς οὐδένα.
ἕκαστος δὲ πειράζεται ὑπὸ τῆς ἰδίας ἐπιθυμίας
ἐξελκόμενος καὶ δελεαζόμενος·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개역개정)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받나니』(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마귀가 주는 유혹과
같은 것을 하시지 않으시며, 유혹에 빠지는 것은 사역자들이 욕심 탐욕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 탐욕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사탄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사탄이 주는 마음이 바로 탐욕이라는 마음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들은 사탄의 자식들이 되어있으므로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다.
15절 εἶτα ἡ ἐπιθυμία συλλαβοῦσα τίκτει ἁμαρτίαν, ἡ δὲ ἁμαρτία ἀποτελεσθεῖσα
ἀποκύει θάνατον.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개역개정)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성장한즉 사망을 낳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신학은 죄의 근원(원죄)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죄의 근원은 욕심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보암직도 하고 탐스렇게 여겨지는 마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라는 것이다. 이게 탐욕이다. 그래서 그 결과 죄를 짓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는 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원죄라고 말한다면, 계명만
지키면 죄가 아닌가? 마음의 탐욕을 죄로 보지 않는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인본주의 율법주의에 사로 잡힌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탐욕을 가진 자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이며, 그들을 죽은 자(사망)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죄가 장성하다는 표현은 탐욕이라는 마음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죄를 지어도 꺼리김없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탐욕이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그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나님이 여겨주시는 것이다.
16절 Μὴ πλανᾶσθε, ἀδελφοί μου ἀγαπητοί.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개역개정)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잘못된 길로 가지 말라』(헬라어 번역성경)
플라나스데는 (사역자들에게)잘못된 길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신앙의 방향을 돈이나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정확하게 잡고 나가라는 것이다.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사역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 사역자들에게 속는 결과가 초래된다.
17절 πᾶσα δόσις ἀγαθὴ καὶ πᾶν δώρημα τέλειον ἄνωθέν ἐστιν καταβαῖνον ἀπὸ
τοῦ πατρὸς τῶν φώτων, παρ’ ᾧ οὐκ ἔνι παραλλαγὴ ἢ τροπῆς ἀποσκίασμα.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개역개정)
『위로부터 온갖 좋은 은사와 완전한 선물은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께서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도에게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신다.
18절 βουληθεὶς ἀπεκύησεν ἡμᾶς λόγῳ ἀληθείας εἰς τὸ εἶναι ἡμᾶς ἀπαρχήν
τινα τῶν αὐτοῦ κτισμάτων.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개역개정)
『그가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으니, 이는 우리가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로고 알레데이아스는 진리이신 말씀(그리스도)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3장 3-5절에서는 예수님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낳았다고 한다. 낳았다는
것은 거듭남이요, 부활인 것이다. 예수님이 첫 부활의 열매이듯이
성도도 또한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거듭남에 대해서 마음의 변화, 삶의 개선 등 인본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듭남은 예수와
함께 죽는 삶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은 성도의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어 그분의 음성을 듣고, 대화를 통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19절Ἴστε, ἀδελφοί
μου ἀγαπητοί· ἔστω δὲ πᾶς ἄνθρωπος ταχὺς εἰς τὸ ἀκοῦσαι, βραδὺς εἰς τὸ λαλῆσαι,
βραδὺς εἰς ὀργήν·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개역개정)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진노하는 것도 더디 하라』(헬라어 번역성경)
토 라는 것은 관사인데, 관사가 붙으면 토 아쿠사이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것, 토 랄레사이는
주의 음성을 가지고 말하는 것으로 번역된다. 듣는 것을 속히 하라는 것은 주의 음성에 듣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진노하는 것은 관사 토가 없으므로 주님이 아니라 자기가 진노하는 것이다. 상담학에서 남의 말을 들어주고 말하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20-21절ὀργὴ γὰρ ἀνδρὸς
δικαιοσύνην θεοῦ οὐ κατεργάζεται. διὸ ἀποθέμενοι πᾶσαν ῥυπαρίαν
καὶ περισσείαν κακίας ἐν πραΰτητι δέξασθε τὸν ἔμφυτον λόγον τὸν δυνάμενον σῶσαι
τὰς ψυχὰς ὑμῶν.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개역개정)
『사람이 진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하게 받으라』(헬라어 번역성경)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레마)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에 들어온 예수 그리스도(로고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프라우테티는 온유하게 라고 번역되었으나, 내용상은 공손하게 라는 의미를 갖는다.
22절 Γίνεσθε δὲ ποιηταὶ λόγου καὶ μὴ μόνον ἀκροαταὶ παραλογιζόμενοι ἑαυτούς.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개역개정)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헬라어 번역성경)
파라로기조메노이는 파라(옆에서)와 로기조(계산하다)의 합성어다. 주님이 심령 안에서 말씀하시는데, 계산기를 두드리듯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23-24절ὅτι εἴ τις
ἀκροατὴς λόγου ἐστὶν καὶ οὐ ποιητής, οὗτος ἔοικεν ἀνδρὶ κατανοοῦντι τὸ πρόσωπον
τῆς γενέσεως αὐτοῦ ἐν ἐσόπτρῳ·κατενόησεν γὰρ ἑαυτὸν καὶ ἀπελήλυθεν καὶ εὐθέως ἐπελάθετο
ὁποῖος ἦν.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개역개정)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자기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헬라어 번역성경)
심령 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섞어버리므로,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보는 것은 날마다 보는 것이므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곧 잊어버리는 것으로 비유한다.
25절ὁ δὲ παρακύψας
εἰς νόμον τέλειον τὸν τῆς ἐλευθερίας καὶ παραμείνας οὐκ ἀκροατὴς ἐπιλησμονῆς
γενόμενος ἀλλὰ ποιητὴς ἔργου, οὗτος μακάριος ἐν τῇ ποιήσει αὐτοῦ ἔσται.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개역개정)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율법은 백성들을 구속한다. 마치 그물에 있는 물고기와 같은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갇힌 자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나가라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너희들은 모두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철저히 율법의 규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의를 주시겠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도저히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으며, 그에 따라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창세기 3장 15절의
여인의 후손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 속에서 영원한 속죄의 대제사장, 멜기세덱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갇힌 자가 아니라
죄의 그물에서 자유함을 입게 되는 거이다. 온전한 율법은 바로 율법 속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파라큎사스는 파라(옆) 큎사스(들여다보다)로서 옆에서 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항상 옆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항상 핸드폰을 가지고 무엇인가 들여다보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26절 Εἴ τις δοκεῖ θρησκὸς εἶναι μὴ χαλιναγωγῶν γλῶσσαν αὐτοῦ ἀλλ’ ἀπατῶν
καρδίαν αὐτοῦ, τούτου μάταιος ἡ θρησκεία.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개역개정)
『누구든지 스스로 신앙심이 깊다고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신앙심은 헛것이라』 (헬라어 번역성경)
심령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씀을
들은 사역자들은 그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듣게되는데, 성경 말씀을 읽고 깨달음으로, 방언으로 듣고, 심령 속에서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 방언은 다른 사람들이 알기가 쉽지 않으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음성을 듣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방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기
보다 자기가 하나님께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방언을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전하는 말씀(방언)과 의미가 다른 것이다.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성급하게
말하지 말고 듣기를 먼저하라는 것이다. 마음(마르디안)을 속인다는 것에서 마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어 성경이 더
잘 표현되어 있다. heart와 mind가 있는데, heart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즉 영의 마음이고
mind는 육신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혼의 마음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마음을 속이는 것은 육의 생각을 주님의 음성에 섞어버리는 것이다. 혼의 생각을 영의 마음에 섞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속이는 자가
된다.
27절 θρησκεία καθαρὰ καὶ ἀμίαντος παρὰ τῷ θεῷ καὶ πατρὶ αὕτη ἐστίν, ἐπισκέπτεσθαι
ὀρφανοὺς καὶ χήρας ἐν τῇ θλίψει αὐτῶν, ἄσπιλον ἑαυτὸν τηρεῖν ἀπὸ τοῦ κόσμου.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개역개정)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신앙심은 고아와 과부를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으로 나아가도록 하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들맆세이는 환난이 아니라, 지성소로 떠 밀려가는 것이다. 고아와 과부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지만,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에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를 찾으신다는 표현을 한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부르짖는 자들(영들)에게 하나님께 나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점으로 나가는 것이다. 에피스켚테스다이는 에피(~위에:영어의 on이다) 스켚다이(목표:goal)의
합성어다. 돌보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목표점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가 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