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δελφο μου, μ ν προσωπολημψαις χετε τν πστιν το κυρου μν ησο Χριστο τῆς δξης.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개역개정)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헬라어 번역성경)

텐 피스틴 투 퀴리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믿음이다. 프로(앞에)소플램프시아이스(눈에 보이는 것)는 눈 앞에 보이는 것들 안에서 라는 말이다. 즉 눈앞에서 보이는 것들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결국 자기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라는 것이다. 자기가 믿는 믿음은 육적 생각()의 믿음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예수의 믿음은 영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자기가 믿는 믿음은 결국 인본주의 신앙으로 흐르고, 기복신앙에 빠진다.

 

2-4ἐὰν γρ εσλθ ες συναγωγν μν νρ χρυσοδακτλιος ν σθτι λαμπρ, εσλθ δ κα πτωχς ν υπαρ σθτι, πιβλψητε δ π τν φοροντα τν σθτα τν λαμπρν κα επητε· σ κθου δε καλς, κα τ πτωχ επητε· σ στθι κθου κε π τ ποπδιν μου,κα ο διεκρθητε ν αυτος κα γνεσθε κριτα διαλογισμν πονηρν;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개역개정)

만일 너희 집회에 금반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받침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헬라어 번역성경)

기복주의 신앙에 빠진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신도들에게도 돈으로 차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데는 관심없고, 헌금을 많이 내게 해서 교회를 크게 키우고, 자기의 영광을 내세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5κοσατε, δελφο μου γαπητο· οχ θες ξελξατο τος πτωχος τ κσμ πλουσους ν πστει κα κληρονμους τς βασιλεας ς πηγγελατο τος γαπσιν ατν;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개역개정)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헬라어 번역성경)

아쿠사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지어다 라는 표현이다.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은 세상의 복이 아니라, 영에 대해서 갈망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택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하신다. 반면에 세상에서 부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난한 자들이다. 부자청년과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세상에 대해서 가난해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6-7μες δ τιμσατε τν πτωχν. οχ ο πλοσιοι καταδυναστεουσιν μν κα ατο λκουσιν μς ες κριτρια;οκ ατο βλασφημοσιν τ καλν νομα τ πικληθν φ’ μς;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개역개정)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학대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를 부를 때 쓰는 그 귀한 이름을 모독하지 아니하느냐.(헬라어 번역성경)

표면적으로는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기복적인 교회의 지도자(교역자)들은 영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갈망하는 자들을 비웃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 신도들도 그들을 함께 조롱한다. 법정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교리적 지식으로 그들을 판단하는 것이다.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율법의 계명을 열심히 지켜나가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사항이므로, 우리는 열심히 율법에 정해진 계명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주의 유대인들이 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 인본주의에 물든 자들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름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다.

8 Ε μντοι νμον τελετε βασιλικν κατ τν γραφν· γαπσεις τν πλησον σου ς σεαυτν, καλς ποιετε·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개역개정)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성취하면 가치있는 것이거니와』(헬라어 번역성경)

칼로스는 가치있는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영의 마음으로 하면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영에는 관심없고, 육의 눈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프로(앞에)소플램프시아이스(눈에 보이는 것)로 표현했다. 눈 앞에 보이는 것들 안에서 라는 말이다. 육적 마음(혼의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다. 영과 하나님 나라는 관심없고, 세상에서 잘되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으면, 세상에서도 잘된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최고의 법은 성령의 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육의 눈으로 믿는 자들이며, 율법주의자들이다.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9-12 ε δ προσωπολημπτετε, μαρταν ργζεσθε λεγχμενοι π το νμου ς παραβται. στις γρ λον τν νμον τηρσ, πτασ δ ν ν, γγονεν πντων νοχος. γρ επν· μ μοιχεσς, επεν κα· μ φονεσς · ε δ ο μοιχεεις, φονεεις δ, γγονας παραβτης νμου. Οτως λαλετε κα οτως ποιετε ς δι νμου λευθερας μλλοντες κρνεσθαι.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개역개정)

만일 너희가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에 의해 범법자가 되리라.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항이라도 어기면 전체를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 받을 자처럼 말하고 행하기도 하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것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동물을 죽이는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을 기억하게 하셨으나 대부분 율법 속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율법 위의 성령의 법으로 나아간다. 자유의 율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13 γρ κρσις νλεος τ μ ποισαντι λεος· κατακαυχται λεος κρσεως.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카타카우카타이)(개역개정)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을 받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크리시스는 판단으로 번역된다. 아넬레우스는 기쁨이다. 크리세오소는 크리시스의 소유격으로, 판단의 긍휼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크리세오소는 목적격으로 되어있으나, 원문에는 소유격인 것이다. 카타카우카타이는 카타(~아래서)와 카우카타이(자랑한다)의 합성어다.

2 12절에서 자유의 율법(그리스도)을 통해서 판단(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성도가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영접하는 것은 그 분의 판단을 받기 위함이다. 긍휼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이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로부터 긍휼없는 판단을 받게 된다.(기쁨이 없게 된다)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긍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났는데, 형제의 영을 살리는 일에 무관심하다면, 그리스도의 긍휼없는 판단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판단을 받고 행하면 긍휼(기쁨)이 되고, 자랑하게 된다.

14 Τ τ φελος, δελφο μου, ἐὰν πστιν λγ τις χειν, ργα δ μ χ; μ δναται πστις σσαι ατν;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능히 할 수 없다』(개역개정)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사역을 행하는 것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은 능히 그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2 13절에서 행함은 『포이에산티』이지만, 14절의 행함은 에르가(사역)이다. 포이에산티는 긍휼을 행하는 것(영을 살리는 것)이지만, 에르가는 교역자가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 믿음은 예수를 믿는 것, 행함은 교회 밖에서 어떤 도덕적인 것을 행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과 행함의 의미는 믿음있는 교역자가 사역(영을 살리는 것)하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믿음이 나타나는 행위(예배, 기도, 교회생활 등)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호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에 들어와 역사하는 것을 완전하게 믿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역자가 사역을 위해 믿음을 가지는데, 믿음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심령에 없는 것처럼) 사역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라는 것이다. 영을 살려야 하는데, 세상의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적인 사역을 한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역자는 주의 말씀을 심령 가운데, 듣고 그 믿음 가운데서 사역을 해야한다는 말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영지주의가 만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라고 했을 때, 그 예수를 믿는 믿음은 대부분 지식으로 예수를 아는 믿음이다. 그래서 아는 지식으로 예수를 믿는다 라고 말만하면, 칭의를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그를 믿기만 하면 믿는 자도 모든 죄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호로고스가 심령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지식적으로 믿는 이러한 것들영지주의의 한 분파가 되는 것이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라고 번역된 것의 원어는『메(없다) 티나타이(능히 할 수) () 피스티스(믿음이) 소사이(구원하는 것을) 아우톤(그들)』이다. 그 믿음이 그들을 능히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로고스가 없는 믿음은 그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14절에서 야고보가 교역자에게 말하는 핵심은 두가지다. 사역을 위해 호로고스의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호로고스가 없는 믿음으로 무슨 사역을 하겠는가 라는 것이고, 호로고스가 없는 믿음은 자기를 구원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15-17ἐὰν δελφς δελφ γυμνο πρχωσιν κα λειπμενοι σιν τς φημρου τροφς, επ δ τις ατος ξ μν· πγετε ν ερν, θερμανεσθε κα χορτζεσθε, μ δτε δ ατος τ πιτδεια το σματος, τ τ φελος;οτως κα πστις, ἐὰν μ χ ργα, νεκρ στιν καθ’ αυτν.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개역개정)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따뜻하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말하고는 그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믿음도 사역을 행하는 것이 없으면 그것만으로도 죽은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비유는 비록 세상에 있는 육신의 형제도 양식이 부족하면 도와주는데, 영적으로 교회 안의 형제들 간에 호로고스의 믿음과 영을 살리는 일에 관심없다면,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행함(사역)은 영을 살리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복음 6 63절에서 처럼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18λλ’ ρε τις· σ πστιν χεις, κγ ργα χω. δεξν μοι τν πστιν σου χωρς τν ργων, κγ σοι δεξω κ τν ργων μου τν πστιν.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개역개정)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다 하고 나는 사역을 행하는데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나타내 보라 나는 사역을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에르가는 사역(영을 살리는 일)이다. 피스틴은 호로고스(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심령에 있는 믿음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행함으로 나오는 믿음을 의미한다. 행함으로 나오지 않는 그 믿음을 나에게 보여봐라는 것이다. 『나는 행함으로 나오는 그 믿음을 네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믿음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영을 살리는 사역은 호로고스가 있는 믿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 믿음없이는 영을 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 말 번역에는 믿음과 행위를 분리된 것처럼 했는데, 호로고스의 믿음과 행위(사역)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19-20 σ πιστεεις τι ες στιν θες, καλς ποιες· κα τ δαιμνια πιστεουσιν κα φρσσουσιν. Θλεις δ γνναι, νθρωπε κεν, τι πστις χωρς τν ργων ργ στιν;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개역개정)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으니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러나 허망한 사람아 사역을 행하지 않는 믿음은 헛것인 줄을 모르느냐』(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교리적 지식적으로 믿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호로고스가 심령에 없는 하나님인 것이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잘 알고 무서워한다. 심령에 호로고스가 없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 이들의 믿음은 귀신들보다 못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텔레이스 데 그노나이』는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개념) 그런데, 지식으로 아는 믿음은 허탄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21βραμ πατρ μν οκ ξ ργων δικαιθη νενγκας σακ τν υἱὸν ατο π τ θυσιαστριον;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개역개정)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사역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브라함의 사역은 아들을 제단에 바치는 일이다. 영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를 제단에 바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 사역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이런 사역은 장차 오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다. 오늘날 성도도 십자가에서 자기를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는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는 것이 바로 자기를 드리는 일이다. 그래서 자기를 드릴 때 호로고스가 그의 심령 안에 들어 오시고, 그 성도는 호로고스의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다.

 

22-24 βλπεις τι πστις συνργει τος ργοις ατο κα κ τν ργων πστις τελειθη, κα πληρθη γραφ λγουσα· πστευσεν δ βραμ τ θε, κα λογσθη ατ ες δικαιοσνην κα φλος θεο κλθη.ρτε τι ξ ργων δικαιοται νθρωπος κα οκ κ πστεως μνον.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개역개정)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사역을 행함과 함께 하고 사역을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다는 기록의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 불리워졌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보거니와 사람이 사역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단지 믿음만으로는 되지 아니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헤 피스티스는 지식으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심령에 호로고스가 들어와 호로고스를 통해, 영을 살리는 일에 사역하게 하는 믿음이다. 믿음은 호로고스를 통해서 사역(영을 살리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역으로 이어지는 믿음이 아니면, 지식으로 아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신학에서 말하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라는 말로, 믿음이 영의 구원이라는 사역으로 연결되는 야고보의 말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알게된다.

25μοως δ κα αβ πρνη οκ ξ ργων δικαιθη ποδεξαμνη τος γγλους κα τρ δ κβαλοσα;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개역개정)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다른 길로 나가게 했을 때에 사역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헬라어 번역성경)

야고보가 기생 라합을 비유로 들은 것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이다. 기생 라합이 행한 일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대하여,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라합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것이다.

26σπερ γρ τ σμα χωρς πνεματος νεκρν στιν, οτως κα πστις χωρς ργων νεκρ στιν.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개역개정)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사역을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프뉴마토스는 영(성령)을 의미한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아 영이 죽어있는 몸을 의미한다. 행함(사역)이 없는 것은 영을 살리지 않는 사역(세상적인 사역)이며, 이 사역이 없는 믿음은 역시 영적으로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즉 호로고스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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