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절Ἄγε νῦν οἱ πλούσιοι, κλαύσατε ὀλολύζοντες ἐπὶ ταῖς ταλαιπωρίαις ὑμῶν ταῖς ἐπερχομέναις.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개역개정)
『돌아오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비참한 일들로 인해서 슬피 울며 부르짖으라』(헬라어 번역성경)
아게는 돌아오라 라는 의미다.
탈라이포리아이스는 비참함이다. 둘째 사망에 들어가 심판을 받는 비참함이다. 부한 자들은 탐욕에 찌든 교역자를 의미한다.
2-3절ὁ πλοῦτος ὑμῶν σέσηπεν καὶ τὰ ἱμάτια ὑμῶν σητόβρωτα γέγονεν,ὁ χρυσὸς ὑμῶν καὶ ὁ ἄργυρος κατίωται καὶ ὁ ἰὸς αὐτῶν εἰς μαρτύριον ὑμῖν ἔσται καὶ φάγεται τὰς σάρκας ὑμῶν ὡς πῦρ. ἐθησαυρίσατε ἐν ἐσχάταις ἡμέραις.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개역개정)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를 대적하는 증거가 되며 불과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마지막 날들을 위해 재물을 쌓았도다』(헬라어 번역성경)
살(몸)이라고 번역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다. 무엇이 그렇게 했는가 하면,
탐욕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4-5절ἰδοὺ ὁ μισθὸς τῶν ἐργατῶν τῶν ἀμησάντων τὰς χώρας ὑμῶν ὁ ἀπεστερημένος ἀφ’ ὑμῶν κράζει, καὶ αἱ βοαὶ τῶν θερισάντων εἰς τὰ ὦτα κυρίου σαβαὼθ εἰσεληλύθασιν. ἐτρυφήσατε ἐπὶ τῆς γῆς καὶ ἐσπαταλήσατε, ἐθρέψατε τὰς καρδίας ὑμῶν ἐν ἡμέρᾳ σφαγῆς,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개역개정)
『보라 너희가 너희 밭에서 곡식을 거둔 품꾼들의 품삯을 사기쳐서 숨겨 둔 품삯이 소리지르며 추수꾼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어갔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탕하여 살륙의 날에서와 같이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헬라어 번역성경)
세상에서 탐욕스럽게 부자가 되는 사람은
일꾼에게 정당한 삯을 주지 않고 착취하여 부를 획득한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하나님 말씀으로 신도들을 양육하지도 않으면서, 각종 명목으로 돈을 헌금하게 하여
자신들의 이익에 치부했다는 것이다.
6절 κατεδικάσατε, ἐφονεύσατε τὸν δίκαιον· οὐκ ἀντιτάσσεται ὑμῖν.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개역개정)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톤 디카이온은 표면상으로 의인으로
번역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율법주의 바리새인들이 십자가에서 죽였듯이, 교회 안에서도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에 물든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대항하지 않고, 오래 참으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7-8절 Μακροθυμήσατε οὖν, ἀδελφοί, ἕως τῆς παρουσίας τοῦ κυρίου. ἰδοὺ ὁ γεωργὸς ἐκδέχεται τὸν τίμιον καρπὸν τῆς γῆς μακροθυμῶν ἐπ’ αὐτῷ, ἕως λάβῃ πρόϊμον καὶ ὄψιμον.μακροθυμήσατε καὶ ὑμεῖς, στηρίξατε τὰς καρδίας ὑμῶν, ὅτι ἡ παρουσία τοῦ κυρίου ἤγγικεν.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개역개정)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너희 심령 속에 임재하시기를 인내하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그것을 위해 인내하느리라 너희도
인내하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임재하심이 가까우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마크로뒤메사테는 고통을 참는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교회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나타난 엄청난 갈등(율법주의, 영지주의 등)으로 인해서 성도들이 받는 고통을 의미한다. 서로 이 교리가 옳다
저 교리가 옳다는 식으로 다툼이 발생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때까지 참으라는 것이다. 재림으로 번역된 파루시안은 파라(옆에서)와 루시안(존재하다, 있다)의 합성어로서,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호 로고스가 심령 속으로 들어오면, 잘못된 것들(율법주의, 영지주의)을
깨닫고, 바른 신앙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호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을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비유하며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은 늦가을에 모내기를 하는데, 그 때 내리는 비가 이른 비다.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건기가 진행되다가
다시 비가 내리는데, 이게 늦은 비다. 그래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려야만 농사가 잘되는 것이다.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에 들어오는 것은 두번의 은혜를 받는다. 이른 비는 성령으로 거듭날 때의 구원의 성령을 의미하며, 늦은 비는
성령세례의 보혜사 성령을 의미한다. 비는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에 들어오는 것이다.
9절 μὴ στενάζετε, ἀδελφοί, κατ’ ἀλλήλων, ἵνα μὴ κριθῆτε· ἰδοὺ ὁ κριτὴς πρὸ τῶν θυρῶν ἕστηκεν.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개역개정)
『형제들아 서로 불평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판단을 받지 아니하리라 보라 재판관이 문 밖에 서 계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크리데데는 종말 때의 심판이라기 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의 판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어느 가정에서 자녀들이 싸울 때 부모가
판단해주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성도간에 다툼이 있을 때, 호
로고스께서 판단해주시는 것이다. 호 크리스테도 호 로고스(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10절ὑπόδειγμα λάβετε, ἀδελφοί, τῆς κακοπαθείας καὶ τῆς μακροθυμίας τοὺς προφήτας οἳ ἐλάλησαν ἐν τῷ ὀνόματι κυρίου.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개역개정)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으로 삼으라』(헬라어 번역성경)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분은 호 로고스라는
말이다. 즉 토 오노마이 퀴리우이신 여호와가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선지자들을 핍박한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선지자들을 핍박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스라엘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선지자들이 고난과 오래 참음은 백성들이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마크로디메사테는 외부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고통의 원인을 참으라는 것이다.
11절ἰδοὺ μακαρίζομεν τοὺς ὑπομείναντας· τὴν ὑπομονὴν Ἰὼβ ἠκούσατε καὶ τὸ τέλος κυρίου εἴδετε, ὅτι πολύσπλαγχνός ἐστιν ὁ κύριος καὶ οἰκτίρμων.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개역개정)
『보라 인내하여 보좌의 주께 나아가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지극히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휘포모넨은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
머무는 것이다. 5장 10절의 오래 참음(마크로디메사태)과 5장 11절의 인내(휘포모네)는
의미상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야고보는 신앙의 가장 핵심을 휘포모네인 것으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 머무는 것에
대해서, 욥의 비유를 들었다. 욥은 마크로디메사테를 잘한
자가 아니라, 휘포모네를 잘한 자라는 것이다. 욥은 엄청난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그 시련을 잘 견디고 인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와중에서 휘포모네를 하고 있음을 하나님이 칭찬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물론 욥은 처음부터 휘포모네를 잘한 자는 아니다. 욥도
고난 속에서 아내로부터 비난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대화 과정을 통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휘포모네하는 과정을 성경은 보여준다.
야고보는 유대인 신자들을 상대로 너희가
욥의 휘포모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휘포모네하는 자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주시는데, 교회 안에서 교리적인 문제로 다투지 말고 먼저 휘포모네를 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정리해 주실
것이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12절 Πρὸ πάντων δέ, ἀδελφοί μου, μὴ ὀμνύετε μήτε τὸν οὐρανὸν μήτε τὴν γῆν μήτε ἄλλον τινὰ ὅρκον· ἤτω δὲ ὑμῶν τὸ ναὶ ναὶ καὶ τὸ οὒ οὔ, ἵνα μὴ ὑπὸ κρίσιν πέσητε.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개역개정)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는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라 이는 너희가 정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에서 헬라어 원문에는 생각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번역하는 자가 끼워넣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Yes(예), 하겠습니다』로 받아드리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No,(우리 말: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적 관습의 차이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그래서 호로고스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맹세가 필요없다.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이 맹세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3-37절에서도 맹세에 대해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맹세에 대해서 『지키라』는 것이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만약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명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하지 말라고 했으며, 심지어 악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맹세 자체를 무조건
금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위선적 형식적인 맹세를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자기들 편리한 대로 악용하는 잘못된 습관을 당장 그만 두라는 뜻이었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맹세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금과 예물(성전에
바칠 헌물)을 걸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되, 성전과 제단에다
대고 말로서 한 맹세는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예물보다 제단이, 성전과 제단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했다. 모든 맹세는, 돈을 걸었든 말로만 서약했든, 결국 하나님께 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맹세라도 최선을
다해 지켜야지 맹세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13절 Κακοπαθεῖ τις ἐν ὑμῖν, προσευχέσθω· εὐθυμεῖ τις, ψαλλέτω·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개역개정)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헬라어에서 기도는 두가지로 표현된다. 프로슈케와 유케다. 프로슈케는 프로스(영어:toward
~향하여)와 유케의 합성어다. 프로스는 하나님의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스유케는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유케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믿는 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다.
성도가 영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듣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전도를 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께
어떻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하면 고난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14절ἀσθενεῖ τις ἐν ὑμῖν, προσκαλεσάσθω τοὺς πρεσβυτέρους τῆς ἐκκλησίας καὶ προσευξάσθωσαν ἐπ’ αὐτὸν ἀλείψαντες αὐτὸν ἐλαίῳ ἐν τῷ ὀνόματι τοῦ κυρίου.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개역개정)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프로슉사스도산은 보좌에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병이 왜 들었는지, 병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장로들은 휘포모네(하나님 보좌에 나가는 것)가 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는 또한 프로슈케(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의 기도를 해야 한다.
15-16절 καὶ ἡ εὐχὴ τῆς πίστεως σώσει τὸν κάμνοντα καὶ ἐγερεῖ αὐτὸν ὁ κύριος· κἂν ἁμαρτίας ᾖ πεποιηκώς, ἀφεθήσεται αὐτῷ. ἐξομολογεῖσθε οὖν ἀλλήλοις τὰς ἁμαρτίας καὶ εὔχεσθε ὑπὲρ ἀλλήλων, ὅπως ἰαθῆτε. πολὺ ἰσχύει δέησις δικαίου ἐνεργουμένη.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개역개정)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고 보좌에
나가는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프로슈케로 기도하지 못하는 초신자들은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육적으로 연약하여 항상 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로 오염된 육체가 병이 들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구한 것 같이 육체의 병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하는
순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고, 처음 믿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 사하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병든 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죄를 사해주심과 같이 병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다. 유케의 기도는 프로슈케의 기도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서로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여기서 의인은 17절에
등장하는 엘리야다. 엘리야가 기도하는 것은 프로슈케(보좌에
나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기도를 하는 선지자였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자가 의인의 기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다.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다가 고치지 못하자,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는데, 예수님이 직접 고쳐달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패역한 자들이여 라고 말하고, 아이의 병을 고쳐주셨다. 이후 제자들은 왜 우리는 고칠 수 없는가라고 예수님께 물렀더니 예수님은 오직 답은 기도(프로슈케)뿐이라고 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유케의 기도만 할 뿐이었다.
17-18절Ἠλίας ἄνθρωπος ἦν ὁμοιοπαθὴς ἡμῖν καὶ προσευχῇ προσηύξατο τοῦ μὴ βρέξαι, καὶ οὐκ ἔβρεξεν ἐπὶ τῆς γῆς ἐνιαυτοὺς τρεῖς καὶ μῆνας ἕξ·καὶ πάλιν προσηύξατο, καὶ ὁ οὐρανὸς ὑετὸν ἔδωκεν καὶ ἡ γῆ ἐβλάστησεν τὸν καρπὸν αὐτῆς.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개역개정)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성정이 있는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북이스라엘 아합왕때 산지자가 엘리야였다. 아합은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섬기고 하나님께 죄악을 저질렀다. 그래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하여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게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왕을 찾아가 바알 선지자 400명, 아세라 선지자 450명을 갈멜산으로 오도록 하여 누가 참신이지 알게
하자고 했다.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알과 이세라 신에게 온갖 소리를 내어 외쳤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를 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우상의 제단을
다 태워버렸다. 가짜 선지자들을 다 죽게 했다. 그리고 엘리야는
백성들을 위하여 다시 하나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한 후 비가 다시 내린 내용이다. 엘리야가 하는 기도(프로슈케)는 그 땅에서 우상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는 기도였던 것이다.
19-20절Ἀδελφοί μου, ἐάν τις ἐν ὑμῖν πλανηθῇ ἀπὸ τῆς ἀληθείας καὶ ἐπιστρέψῃ τις αὐτόν,γινωσκέτω ὅτι ὁ ἐπιστρέψας ἁμαρτωλὸν ἐκ πλάνης ὁδοῦ αὐτοῦ σώσει ψυχὴν αὐτοῦ ἐκ θανάτου καὶ καλύψει πλῆθος ἁμαρτιῶν.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개역개정)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미혹되어 진리를 떠나 있다면 누군가가
그를 돌아서게 해야하느니라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이것을 그에게
알려주라』(헬라어 번역성경)
미혹은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를 의미한다. 초대교회 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
이 미혹이 확산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을 깨닫고, 미혹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벗어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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